2022. 1. 27. 21:31ㆍ누가복음강해
이스라엘은 창조자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서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빛으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통해 아담의 죄와 그 죄로 인한 결과를 치유하고 회복하실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도 죄를 지었고, 그 결과 그들이 살던 땅에서 쫓겨나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이스라엘은 비록 지리적으로는 잡혀간 땅에서 가나안 땅으로 되돌아 왔지만, 현실에서의 포로 상태가 아직 끝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약속은 성취되지 않았습니다. 성전은 아직 재건되지 않았습니다. 메시아도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이교도들은 이스라엘에 굴복하지 않았으며, 이스라엘은 여전히 심각할 정도로 이교에 오염되고 죄악으로 물든 상태였습니다.
이런 현실을 향해 성경은 이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는 날이 꼭 올 것이라 분명하고 강력하게 선포했습니다. 성경은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고, 이스라엘은 그 이야기 안에서 살았고, 그 이야기는 정해진 결론을 향해 움직여 갑니다. 그 결론의 내용은 머지않은 어느 날에 야훼가 온 세상의 왕이 되실 것이며, 악은 결정적인 패배를 당할 것이고 하나님이 온 세상을 지배한다는 것입니다.
이 언약의 목적은, 창조자가 이스라엘을 제외한 나머지 세계의 운명과는 상관없이 이스라엘만을 택해서 특별한 민족으로 삼으려는 것이 절대 아니었습니다. 언약의 목적은 창조주가 이스라엘을 통해 자신의 온 세계에 말을 걸고 그 세계를 구원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신 목적은 아담의 죄로 인한 문제를 원래 상태로 되돌리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포로 상태를 통해 명백해졌듯이, 이스라엘에게도 회복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구원의 메신저가 되어야 할 그들에게도 구원의 메시지가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해결책을 가진 백성이 도리어 문제의 일부가 되어버렸습니다. 1세기 유대인 대부분은 포로 상태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믿었습니다.
사람들은 '부활'을 그저 '죽음이후의 삶'이나 '하늘에 가는 것'으로 생각하기 일쑤입니다. 하지만 1세기 유대 세계에서 부활은 하나님의 새로운 세계에서 구현된 새 생명을 뜻했습니다. '죽음 이후의 삶' 이라고나 할까~. 그런데 누가는 종말에 주어질 새로운 몸은 이전의 몸과 같지 않다고 본문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오직 최초의 창조에 버금가는 새로운 창조행위를 통해서 더 이상 죽음에 굴복하지 않는 새로운 유형의 물질을 낡은 것으로부터 만들어 내실 것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몸은 하나님의 세계의 두 차원, 즉 하늘과 땅 둘 다에 속할 것이라는 게 본문의 핵심입니다. 요한계시록 마지막에 하늘과 땅은 마침내 서로 결합하여 하나가 되고 따라서 더 이상 왕복 이동은 없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마지막에 두 차원이 함께 연합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 몸은 땅에 속해 있다면 반면에 예수님의 새 몸은 땅과 하늘 모두에 익숙합니다. 그리스도인이지만 죄와 죽음의 세계에 좌우되는 사고방식 속에 살아가는 우리가 하나님의 새로운 세계에 적응하려면 엄청난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이게 바로 복음이 주는 도전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 사고가 이 모든 내용을 수용하려면 힘들 것입니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제자들도 그랬으니까~
그러면 예수님은 무엇 때문에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났을까? 그것은 하나님이 행동하셔서 마침내 아브라함과 모세와 예언자들에게 주신 약속을 전부 성취될 때, 전 세계가 하나님의 구원과 치유의 사랑을 이 땅에 실현하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하나님이 예수님이 전한 복음이 맞다고 인정을 하신 것입니다. 또한 부활 사건은 예수님을 하나님이 화목제물로 인정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예수님의 부활 사건이 없었다면 기독교는 존재의 가치가 없고 성경은 하나의 윤리도덕책에 불과할 것입니다. 부활 사건이 없었다면 예수님은 메시아로 인정을 받지 못했을 것이며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가 다스린다는 하나님 나라의 개념도 없었을 것이며 온 세상은 지금의 역사보다 더 생지옥이 되었을 것입니다.
24:49,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 예수님이 승천을 하시는 이유는 보해사 성령님이 오시기 위해서입니다. 삼위의 하나님 중 성부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을 기획하시고 성자 하나님은 그것을 실행하시고 성령 하나님은 능력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다시 말하면 성령 하나님은 삼위의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믿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제자들도 성령세례를 받기 전에는 예수님을 3년이나 따라다녀도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알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적용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도 성령세례를 받지 못한다면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입니다. 제자들도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 성령세례를 받고 난 후에 비로소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무장하여 이 새로운 임무에 참여하게 됩니다. 사도행전은 그 결과로 일어나기 시작한 사건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누가의 복음서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끝납니다.
누가는 복음서를 통하여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을걸까? 누가는 이어지는 사도행전을 통해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이 예수님을 보내신 목적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입니다. 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로마의 황제가 아니라 하나님이시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활을 통하여 '세상 신'들의 영역인 죽음의 권세를 이겼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입니다. 쉽게 이야기를 하면 이제 나사렛 예수님 안에서 계시된, 살아 계신 하나님께 항상 경배하고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가자는 것입니다.
이 시간에 묵상해봅시다. 나는 누가복음에 대한 강해를 듣고 난 후에 나의 삶은 변화가 있었는가~ 아니면 그저 누가복음에 대해서 지식이 조금 늘어났다고 생각을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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