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5. 26. 16:44ㆍ마태복음강해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애굽으로 피신하는 내용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크리스마스 날에는 종교를 떠나 많은 사람들이 이 날을 축하하고 즐깁니다. 그러나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의 탄생은 당시 가장 권력 있는 사람에게 너무도 큰 위협이 된 나머지 한 마을의 모든 아기를 죽이게 만든 사건인 것입니다. 즉, 예수님은 탄생부터 현상금이 걸린 채 태어나셨던 것입니다. 음모가 꾸며졌고, 천사들이 요셉에게 위험을 경고해야 했고, 그들은 간신히 때맞춰 베들레헴에서 도망쳤던 것입니다.
2:13, “그들이 떠난 후에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이르되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 하니 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여 내가 네게 이르기까지 거기 있으라 하시니”마리아와 요셉은 헤롯에 대하여 아는 바가 없었지만 헤롯은 아기 예수를 제거하려고 음모를 꾸미고 있었습니다. 헤롯왕은 음모를 꾸민다는 의심이 들면 가족이라도, 심지어 사랑하는 아내까지도 죽였던 인물입니다. 또한 자신이 죽어서 장례식 때 곡소리가 울려 퍼지도록 하기 위해 여리고의 지도자들을 학살하라고 임종 자리에서 명령을 내렸던 자였습니다. 그런 그가 한 아기를 왕으로 추대하는 일을 막으려고 수많은 아기를 죽이는 일쯤은 스스럼없이 할 수 있는 자였습니다. 헤롯은 권력을 지키려고 편집증이 더 심해졌던 것입니다. 그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세상의 많은 독재자들의 모습입니다.
마태복음은 유대인들을 위한 복음서입니다. 그러므로 마태는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것을 구약 성경의 성취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하여 구약 말씀을 인용합니다. 마태는 이것이 바로 이스라엘의 구속자가 등장하는 방식이고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해방시키시고 온 세상에 정의를 가져오시는 방식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2:15, “헤롯이 죽기까지 거기 있었으니 이는 주께서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바 애굽으로부터 내 아들을 불렀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라”본문은 호세아 11:1을 인용한 구절입니다. 그런데 이 본문은 독자들에게 많은 혼란을 주고 있습니다. 마태는 마치 호세아가 출애굽 한 사건을 되돌아본다는 것을 무시하고 아직 오시지 않은 ‘하나님의 아들’을 예언하고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기 때문입니다. 그럼 마태는 무슨 생각을 가지고 이 본문을 인용했을까? 마태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서, 말하자면 의인화된 이스라엘로서, 예수님은 이스라엘이 실패한 것을 드디어 성공시키시는 분이다(4:1-11)고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헤롯이 속은 것을 알고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아이들 중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입니다(16절). 마태는 이 또한 성경의 성취로 이야기합니다. 2:17-18, “이에 선지자 에레미아를 통하여 말씀하신바 라마에서 슬퍼하며 크게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 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받기를 거절하였도다 함이 이루어졌느니라”본문은 에레미아 31:15 말씀으로 이스라엘을 드디어 유배로부터 돌아오게 하시는 하나님의 언약 갱신에 대한 내용입니다. 비록 이스라엘이 눈물을 흘리고 슬퍼하겠지만, 구원의 날이 오고 있다는 내용입니다. 다시 한번 마태는 모든 것이 암울하고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예수님이 구원을 가져다주실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헤롯이 죽자 천사가 요셉에게 이스라엘로 되돌아가라고 현몽합니다(19~20절). 마태는 예수님의 가족이 나사렛에 정착하는 사건을 이사야 11:1에 나오는 예언과 연결시킵니다. 2:22-23, “그러나 아켈라오가 그의 아버지 헤롯을 이어 유대의 임금 됨을 듣고 거기로 가기를 무서워하더리 꿈에 지시하심을 받아 갈릴리 지방으로 떠나가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사니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에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하심을 이루려 함이러라”누가복음에서는 나사렛이 요셉과 마리아의 고향으로 나옵니다(눅 1:26, 2:4). 나사렛은 하스몬 왕조시대에 국력을 키우기 위하여 변방에 이주정책으로 만든 조그마한 동네였습니다. 또한 헤롯 대왕이 죽고 bc4 년에 갈릴리 수도 세포리스에서 반란이 일어나서 로마군이 반란군을 진압한다는 명목으로 그 지역을 초토화시켰던 곳입니다(사행 5:37). 그러므로 나사렛은 세포리스에서 가까운 곳이기 때문에 나사렛 또한 큰 피해를 입었다고 역사학자와 신학자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구약에는 없는 지명인 곳입니다. 그러면 이사야의 예언은 무슨 뜻일까? ‘나지르’라는 단어는 ‘가지’라는 뜻입니다. 이사야는 한 가지가 이새의 뿌리에서 나올 것이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 다윗 왕가에 새로운 시작이 있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으로 말미암아 일어난 광란과 비참의 사건들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바로 그 사건들 때문에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하여 이스라엘이 오랫동안 기다려 온 구원과 구출을, 그리고 그 구원과 구출을 통해서 온 세상을 위한 하나님의 정의를 실행하시는 것입니다. 비참한 상태에 빠진 세상에서 편안한 등장은 의미가 없습니다. 이 세상이 폭력과 불의 아래에 있는데 쉬운 인생을 사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이 되시려면, 고통이 있는 자리에서 우리와 함께 계셔야 한다는 것을 마태는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은 예수님 당시의 세상보다도 더 폭력과 불의가 판치는 세상일 것입니다. 이런 현실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예수님을 통하여 과연 무엇을 추구해야 할 것인가를 한 번 진지하게 묵상해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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