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쉬운 마태복음강해]#5. 3:1-10. "요한의 설교"

2022. 5. 27. 11:52마태복음강해

 

세례 요한은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입니다. 말라기 선지자는 마지막 때에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하나님이 엘리야를 보내실 것(말 4:5)이라고 했는데 그가 바로 세례 요한이었던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자신의 사명은 ‘주의 길을 예비하는 종’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주’는 단순한 주인이 아니고 하나님 자신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왕이나 대통령이 어느 곳에 행차할 때에는 반드시 그전에 경호실이나 비서실에서 중요한 사람이 와서 모든 일을 준비해 놓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해야만 왕이나 대통령이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중요한 일들을 바로 처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의 길을 준비하는 사신이었던 것입니다.

3:1-2, “그때에 세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말하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였으니”유대인들은 말라기 선지 이후 오랫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했습니다. 그만큼 영적으로 피폐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비록 이방 세계의 포로생활은 끝났다고 해도 아직도 이방 세력의 지배를 받고 있는 현실에서 그들은 그들을 구원해줄 메시아를 손꼽아 기다렸을 것입니다. 이런 때 세례 요한이 나타난 것입니다. 얼마나 반가웠을까!

3:3, "그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자라 일렀으되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가 오실 길을 곧게 하라 하였느니라“본문에서 말하는 것은 이사야 40장을 인용한 것입니다. 한 번 생각해보세요 유대인들은 이 말씀을 수백 년 동안 들어왔을 것입니다. 그것은 유배의 끔찍한 고통을 겪은 후 그 민족에게 주어진 희망과 용서와 치유에 관한 위대한 메시지였습니다. 하나님이 드디어 돌아오셔서 위로하시고 구해 주실 것이라는 메시지였습니다. 그 일이 바로 지금 일어난다고 요한이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3:4, “이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이었더라”한 번 생각해보세요 회개하라고 하면서 본인은 그 당시 유행하던 부드러운 양털로 만든 사치스러운 의복을 입고 말씀을 전한다면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마태는 지금 세례 요한의 의복과 그가 먹는 음식을 통해 회개하는 자의 모습을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요한처럼 입고 먹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설교자는 삶이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설교자들이 대형 승용차를 타고 화려한 옷을 입고 비싼 밥을 먹으면서 성도들에게 예수를 닮은 삶을 살아가라고 하면 성도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3:5-6, “이 때에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 강 사방에서 다 그에게 나아와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니”그렇게나 갈망하고 있던 선지자가 왔으니 회개하고 세례를 받으러 이스라엘 온 땅에서 몰려왔다고 말하고 있는 것은 그만큼 그 당시 유대인들은 메시아 대망 사상이 컸다는 것을 마태는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그들을 요한은 요단 강물에 푹 담갔습니다. 이것은 단지 개인들을 위한 상징적인 정결 의식이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위해서 그리고 이 세상을 위해서 역사 속에서 하고 계시는 새로운 일을 표시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천 년도 더 전에, 처음으로 약속의 땅에 들어와서 그곳을 정복할 때 요단강을 건넜습니다. 이제 그들은 약속의 땅을 정복하는 것보다 더 위대한 정복, 즉 모든 악을 이기시고 하늘에서처럼 땅에서도 자신의 나라를 세우시는 하나님의 정복을 준비한다는 표시로 요단 강물에 세례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3:7-8,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세례 베푸는 데로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그 당시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같이 다니지 않을 만큼 그들은 서로 앙숙지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민중들의 지지가 그들의 기반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한에게 몰려가 세례를 받으니 그들은 당연히 신경이 쓰였을 것입니다. 혹시 민중들이 요한에게 지지를 할까 싶어서, 그래서 그들은 세례 요한이 진짜 선지자인가를 알아보려고 왔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 자징 메시아라고 주장한 사람들이 수십 명이 있었다고 합니다. 요한이 이들에게 말하는 진정한 회개는 무엇일까? 마음과 삶을 완전히 바꾸고 그 변화가 지속되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자신의 정결을 자랑했습니다. 그들은 추잡하고 자명한 죄를 지었을 가능성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교만 자체가 돌아오시는 하나님의 길을 방해하고 있었습니다. 이방인들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다른 이스라엘 사람들에 대해서도 그들이 지닌 오만은 오시는 자 앞에서 필요한 겸손과는 꽤 거리가 멀었던 것입니다. 특히 요한은 조상에 대한 바리새인들의 자부심을 공격합니다.

3:9,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이들이 “우리 조상은 아브라함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약속을 주셨다. 우리는 그 아브라함의 자녀다. 따라서 하나님은 우리를 책임지실 것이고, 결국에는 다 잘되게 되어 있다”란 뜻입니다. 그러나 요한은 그렇게 생각하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너희 하나님은 주권적인 창조주이시기에 너희 발치에 있는 그 돌들을 가지고도 아브라함의 새로운 자녀로 만드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요한은 경고를 합니다.

3:10,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그분이 오시면 자비도 베푸시겠지만 심판도 하실 것이라고 요한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심판을 받지 않을 유일한 길은 너희가 열매 맺는 나무임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그렇지 않으면 불에 던져질 땔감이 될 것이라고 요한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은 하나님 나라가 임할 때의 실제 모습을 알지 못한 채 그 길을 예비했습니다. 그리고 요한 자신도 그 결과를 보고 혼란스러워했습니다(11:2-6). 그런데 2,000년이 지난 우리들은 예수님이 오셨고 그 예수님이 가지고 오신 하나님의 나라에 살고 있습니다. 지금 세례 요한이 오면 무슨 생각을 할까? 지금의 세상이 세례 요한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세상일까? 아니면 세례 요한은 좌절할까?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어떻게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려야 할까? 그분의 재림에 어떤 길을 준비해야 할까? 요한은 말하고 있습니다. ‘회개’하라고. 이 회개는 우리들이 지은 자범죄를 참회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회개는 세상에서 하나님에게로 돌아서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가지고 온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재림 시에는 우리는 영원히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부활’하여 새롭게 창조된 세계에서 ‘영생’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현재 우리들이 가지고 있어야 할 신앙입니다.

이 시간 나의 신앙관은 무엇인가를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