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쉬운 고린도후서강해]#12. 4:13-18. "믿음의 영"

2024. 5. 21. 12:12데살로니가강해/고린도후서강해

 

오늘 본문은 바울 자신이 겪는 어려움과 고난에도 불구하고 믿음을 잃지 않고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우리는 우선 지금 바울이 처한 상태를 알아야지 본문을 좀 더 이해하기가 좋을 것입니다. 바울은 편지 전체에서, 특히 지난 몇 구절에서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 말하고 있습니다. 자신은 짓눌려 죽을 지경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또 하나님의 능력이 자신을 죽음에서 살려 내어 새 생명을 주었다고 틈틈이 말해왔습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에서 인용하고자 하는 시편의 주제랑 잘 맞아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4:13-14, “기록된 바 내가 믿었으므로 말하였다 한 것 같이 우리가 같은 믿음의 마음을 가졌으니 우리도 믿었으므로 또한 말하노라 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아노라바울은 이러한 고난을 견디도록 만든 원인을 설명하기 위해 시편 116:10절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시편 기자는 절망적인 질병과 죽음 가운데서 자신을 건지시는 하나님께 대한 확신을 고백했는데(116:8), 바울도 이런 확신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시편 기자처럼 내가 믿는다고 말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다윗을 고난 가운데서 승리케 해 주신 과 똑같은 믿음의 을 자신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승리를 확신하며 또한 그것을 고린도 교인들에게도 말한다는 것입니다.

 이 시편은 바울의 처지에 안정맞춤인 것입니다. 성경을 잘 알고, 또 어린 시절부터 줄곧 매일 기도에 시편을 활용해 온 바울은, 최근 자신이 겪은 경험들이 시편 기자가 말하는 내용과 잘 들어맞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즉 죽음의 올가미가 그를 둘렀고, 지하 세계의 역겨운 냄새가 올라와 그를 끌어내리고 있는 것 같은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때 야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그를 건져 주셨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예수님의 아버지로 알고 있는 그 하나님, 그 권능을 힘입어 메시아께서 친히 죽음에까지 내려갔다가 새 생명으로 부활하신 그 하나님이 바울 역시 마찬가지로 주께서 내 생명을 사망에서, 내 눈을 눈물에서, 내 발을 넘어짐에서 건지셨다”(시편 118:8)고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시편 기자가 믿음을 지켰고 자신도 그 믿음을 지켰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이라고 바울은 역설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시고 부활하신 것처럼 그리스도인들은 현재 고난을 당하지만 미래에 죽음에서 일으켜질 것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믿기 때문에 현재 고난을 이겨나갈 것을 믿는다는 것입니다(5:27, 1:22).

 4:15, “이는 모든 것이 너희를 위함이니 많은 사람의 감사로 말미암아 은혜가 더하여 넘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바울은 본문에서 자신이 당한 이 모든 고난이나 믿음, 전도 활동도 모두 고린도 교인들을 위한 것이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그들이 구원받고 모두 하나님 앞에 서게 되는 것이 자신의 목적이요 사명이란 것입니다. 바울이 온갖 고난을 당하면서도 복음을 전했던 이유와 목적이 바로 은혜가 더하여 넘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시편 기자처럼 최종 결과가 살아 계신 하나님께 더 많은 찬양을 돌리기를 애타게 바라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세상은 본래의 모습을 더 많이 되찾고, 더 많은 하나님의 능력이 아직도 풍성한 축복이 필요한 곳으로 흘러가 구원하고 치유하기를 바울은 시편 전체에서 받아들였고 그것을 몸소 실천했고 예수님의 복음의 빛 안에서 그 의미를 깊이 묵상했던 것입니다. 그런 다음 이제 자신의 고난을 멸시하거나 자신을 실패자로 여기지 말고, 자신과 같은 마음으로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하라고 고린도 교인들에게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4:16-18,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본문에서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의 돌보심과 목적 밖으로 완전히 밀려났다고 사람들이 생각할 수 있는 환경임에도, 자신이 낙심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본문은 오늘날의 세계관에서 보면 오해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바울은 참된 실제가 비육체적인 것, 그런 의미에서 영적인것이라고 주장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다른 바울 서신과 특히 다음 장이 보여 주듯이,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그는 지금 육체적인것과 비육체적인것이 아니라. 미래 세계와 대비하는 현재 세계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보는 것은 잠시 동안만 지속된다. 하지만 장차 하나님의 새 세상에서 탄생하게 될 하나님의 실제는, 지금 우리 시야에 들어오지 않더라도,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더 풍부하고 풍요한 특징을 지닐 것이다

 바울은 이것을 영광의 중한 것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3장에서 주장하듯이 율법을 받는 영광도 우리가 복음 안에서 받는 영광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제 바울은 현재 우리가 지닌 질그릇 안의 보화와 같은 영광(7), 장차 나타날 영광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논증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그 점에 비추어 볼 때, 바울이 견딘 극한의 슬픔과 역경마저도 작은 일순간의 환난처럼 보였다는 것입니다. 그는 현재의 몸이 장차 훨씬 더 완전하게 덧입을 참 자아의 시제품 옷이란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나는 지금 천막에서 살지만, 앞으로 궁궐에서 살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사도적 소명과 사역에 대해 말하면서, 자신의 고난이 겉보기에는 낙심해야 할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은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런 주장을 하기 위해 그는 미래의 부활에 대해, 그리고 그것이 현재의 고난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시간 나는 현재 내가 받고 있는 고난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한 번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