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쉬운 고린도후서강해]#8. 3:7-11. "새 언약의 직분"

2024. 5. 14. 16:06데살로니가강해/고린도후서강해

 

오늘 본문은 구약 사건을 인용하면서 옛 언약과 새 언약, 율법의 직분과 새 언약의 직분을 논함으로써 구약의 직분에 비해 사도직이 영광스럽고 우월하다는 것을 논증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바울은 본문에서 영의 전파가 죽음의 전파보다 훨씬 더 영광스럽고, 하나님이 메시아 예수 안에서 맺으신 새 언약이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과 맺으신 옛 언약보다 훨씬 더 영광스럽다는 메시지를 고린도 교인들에게 이해시키려고 애쓰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울이 이미 고린도전서에서 복음에 대해서 충분히 말해왔지만 아직도 부족한 것이 있다는 것일까? 아마도 고린도 교회에서 모세의 율법을 준수하라고 가르쳤던 사람들이 그곳에 있었을 수도 있을 것이며 아니면 바울이 단지 새 언약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것인지를 고린도 교인들에게 전달하려고 했을 가능성이 훨씬 더 높았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3장은 6:3-10의 대절정을 향해 한 걸음씩 전개해 가는 긴 논의의 첫 부분으로, 메시아 예수의 참된 사도의 삶과 사역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그렇게 보이지 않을지 몰라도 정말 영광스러운 일임을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3:7-8, “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율법 조문의 직분도 영광이 있어 이스라엘 자손들은 모세의 얼굴의 없어질 영광 때문에도 그 얼굴을 주목하지 못하였거든 하물며 영의 직분은 더욱 영광이 있지 아니하겠느냐바울이 자신의 직분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것인지를 이야기하기 위해 출애굽 34장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오랫동안 산 위에 머물면서, 성막 곧 하나님이 오셔서 자기 백성들과 함께 거하실 처소를 세우는 일에 관한 하나님의 지시를 받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백성들은 아론을 설득하여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었습니다. 모세와 그의 율법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발한 첫마디는 유죄 판결, 즉 사형선고였습니다. 모세는 죄지은 백성을 굽어살펴 달라고 하나님께 호소하는 피고 측 변호인의 자리에 서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간절하고 감동적인 기도는 하나님으로부터 새로운 계시를 이끌어 냈습니다. 모세는 언뜻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고, 악은 반드시 해결해야 하지만, 하나님은 참으로 자비가 넘치는 하나님이시라는 메시지를 들었습니다. 모세가 다시 산꼭대기에서 돌아왔을 때, 그의 얼굴은 빛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를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과 맞대고 대화를 나누기 위해 하나님이 친히 임재하시는 성막에 들어갈 때를 제외하고는 너울로 자기 얼굴을 덮었던 것입니다.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 영광스런 하나님의 계시마저도 복음, 예수님에 관한 메시지 안에 계시된 영광과 견주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새 언약의 직분이 옛 언약의 직분보다 더욱 영광스러운 이유를 말하고자 합니다.

 3:9, “정죄의 직분도 영광이 있은즉 의의 직분은 영광이 더욱 넘치리라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옛 언약의 직분은 정죄하는 직분이지만 새 언약의 직분은 의롭게 하는 직분이라는 것입니다. 옛 언약의 직분은 율법을 범한 사람들을 정죄하였지만(7:11), 성령으로 말미암는 새 언약의 직분은 사람들로 하여금 율법을 완성하신 그리스도를 믿게 하고, 그의 의를 힘입도록 만들었다는 것입니다(3:21)

 3:10, “영광되었던 것이 더 큰 영광으로 말미암아 이에 영광될 것이 없으나바울이 본문에서 말하는 요점은 옛 언약의 직분은 과거에 작은 영광을 가졌지만 새 언약의 직분은 현재 더 뛰어난 영광을 가졌다고 논증하고 있는 것입니다. 해가 떠 오르면 촛불이 빛을 잃어버리듯이 옛 언약 시대에 영광스러웠던 모세의 직분은 새 언약 시대에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써 그 빛을 잃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옛 언약의 문자의 직분이 영광스러웠다고 하면 새 언약의 성령의 직분은 훨씬 더 영광스러운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3:11,“없어질 것도 영광으로 말미암았은즉 길이 있을 것은 더욱 영광 가운데 있느니라바울은 본문에서 옛 언약의 직분은 그 영광이 사라져 없어질 것이지만 새 언약의 직분은 계속 남아있게 된다고 논증하고 있습니다. 옛 언약 시대에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일시적이고, 물질적, 지상적이지만 새 언약 시대에서는 영원적이고 영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새 언약이 본체이며 옛 언약은 새 언약을 예표하는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비교는 단순히 두 언약의 직분의 차이가 아니라 구약과 신약, 즉 율법과 복음의 차이를 논하는 것이며 바울 신학의 기본이 되는 것입니다.

바울의 전체 논의에서 주목할 부분이 있습니다. 곧 그리스도인들은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4:18), 잠시 동안만 이어지는 것보다는 영원히 이어지는 것, 죽음으로 마감되는 삶의 방식과 문화가 아니라, 죽음의 반대인 생명을 가져다주는 것에 근거하여 자신의 길을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주제들이 이 서신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또 바울은 여기서 누구나 인정하는 모세의 영광스런 사역과, 사도로서 자신이 해야 하는 사역의 대조에 근거하며 이런 주제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영광을 볼 수 없는 순간에도 진짜 영광을 추구하라고, 시대 조류가 그들을 방해해도 오직 복음의 길을 가라고 논증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시간 나는 과연 시대 조류를 거스러며 복음의 길을 가고 있는지 한 번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