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쉬운 골로새서강해]#11. 3:12-17. "예수님의 이름으로"

2024. 7. 10. 11:08골로새서강해

 

앞 단락에서 바울이 대략적으로 서술한 행동들은 결국 가족이든 마을이든 도시 전체든, 공동체 자체를 갈가리 찢어 놓는다는 것입니다. 고삐 풀린 성적 방종과 길들여지지 않은 분노의 말은 결국 모든 관계를 무너뜨린다고 경고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런 분위기가 즐겁게 지내고 있다고 스스로를 속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결정적 순간에 자신들은 길을 잃었고, 혼란스럽고, 외롭고, 비통하다고 인정할 것입니다. 바울이 오늘 본문에서 묘사하는 사람들은 할 말이 별로 없고 의지가 약하고 겁이 많은 무리가 아닙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바울이 무엇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지 잘 모르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우리들에게 나쁜 짓을 한 사람을 진심으로 용서하려고 애써 본 적이 있는가? 전심으로 긍휼히 여기고 인내하려고 해 본 적이 있는가? 그리스도의 평화, 그리스도의 말씀, 그리스도의 이름이 우리들 삶에서 실제가 되도록 애써 본 적이 있는가? 그래 보았다면 그것이 쉽지 않음을 잘 알 것입니다. 이것은 진지한 기도와 진정한 도덕적 노력이 필요한 일일 것입니다. 그런 노력을 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어려운 결정을 할 수 있고 다른 영역에서도 도전하는 사람들입니다. 달리 말하면, 그리스도인의 행동은 우리를 덜 인간답게 하는 것이 아니라 더 인간답게 해 준다는 것입니다. 제멋대로 살고 습관적으로 화를 내고 거짓말을 하는 것은 잠시 재미있어 보일지 모르지만 머지않아 사람을 파멸시킬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리스도인의 적극적인 윤리 책임에 대해 말하는 내용입니다.

 여기에는 균형의 문제가 있을 것입니다. 어떤 교회들은 성적 죄를 근절하는 데는 관심이 아주 많지만, 바울이 주장하는 긍정적인 것들(친절, 겸손등)을 추구하는 일에는 소홀히 하는 경향도 있을 것입니다. 종종 사랑으로 위장한 성적죄는 오늘 본문에서 묘사하는 진짜 사랑을 모방한 것임에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명백한 성적 죄는 없지만 악의적 험담이 가득한 교회는 한 가지 죄를 다른 것으로 바꾸었을 뿐입니다. 마찬가지로 모두가 서로 잘 배려하고 도와 주지만 부도덕이 무성한데도 손을 쓰지 않고 방치하는 공동체도 있을 것입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이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으려면 주 예수의 이름으로말하고 행동하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3:12-13,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바울의 행동 양식 목록은 다시 한번 중목 나열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본문의 목록을 흟어보고 우리가 서로 괜찮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괜찮은사람이 되는 것은 시작일 뿐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각 단어는, 어떤 행동과 말이 우리들 삶에서, 우리의 교회 생활에서, 우리가 사는 마을이나 도시 생활에서 나타나야 하는지 생각해 보고 자문해 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사랑 많은 것, 친절한 것, 겸손한 것, 온유한 것, 무엇이든 견딜 준비를 하는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들이 알아야 할 것은 사랑 많은 것은 감상적이라는 의미가 아님을 알아야 하며, 친절한 것은 만만한 사람이 되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겸손은 낮은 자존감과 같지 않습니다. 온유함은 약함이 아니라 힘세고 거친 말을 길들일 때 얻는 성품입니다. 오래 참음은 누구든 자신에게 하고 싶은 대로 대하도록 내버려 둔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을 마땅히 그래야 하는 대로 살게 하는 중요한 덕목에 대해 사람들이 비웃지 못하게 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을 비웃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그렇게 못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들은 그렇게 노력이 필요한 생활 방식에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 편으로 세상 사람들은 다 타락을 해도 그리스도인만큼은 거룩한 삶을 살기를 바라고 있을 것입니다. 그 표본을 바울이 본문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3:14-15,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바울이 본문에서 거듭 왕이신 주님, 예수님을 본으로 제시하며 그 이미지를 정리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들은 이 용서를 통해 힘을 얻어 사랑을, 우리가 입어야 하는 새 옷들 모두를 묶어 주고 제자리에 있게 해 주는 띠로 혹은 외투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왕이신 예수님은 우리의 생각을 결정짓는 분이시며, 백성들이 평강을 누리기를 바라는 그분의 마음이 결정 요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분의 말씀이 그리스도인 공동체 안에 살아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3:16-17,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복음과 기록된 복음서들 안에는 항상 더 탐구하고 깨달을 것들이 있으며, 공동체 안에는 그 의미를 찾아내고 그것을 교회 생활에 적용할 다양한 은사가 필요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무슨 행동이나 말을 하든 주 예수의 이름으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들의 마음과 생각 속에 자리 잡으면 다른 많은 것이 다 제자리를 찾을 것입니다. 이 시간 나는 항상 주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고 행동하고 있는 삶을 살고 있는지 한 번 점검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