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쉬운 골새서강해]#12. 3:18-4:1. "성도의 삶의 방식"

2024. 7. 11. 15:25골로새서강해

 

지금까지는 새 사람의 생활 원리에 대해 언급하였고 이제는 구체적으로 가족관계에 있어서 새 사람이 된 성도가 취할 태도에 대해 가르치고 있는 내용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이 가르치는 것은 가정의 여러 관계에 대한 아주 간단한 질서이기도 합니다.

 3:18-19,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마땅하니라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당시 유대와 헬라 사회에서 여자의 위치는 철저히 종속적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복음이 가르친 평등과 자유의 정신은 가정의 전통을 깨트리고 분란을 일으킬 수 있었던 것입니다(고전 11:2-16). 본문에서 아내들이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이 주님 안에서 마땅히 해야 할 일임을 바울은 언급하고 있습니다. 아내들도 주님 안에서는 똑같은 권리와 특권을 가지고 있지만 한 가정의 평화와 질서를 위해서는 남편의 지도권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내를 향한 바울의 가르침은 오늘날 많은 비난을 받는 내용입니다. 수많은 번역본에서 핵심 단어는 복종하다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 단어를 보고, 자기 자신이 될 수 없고 스스로 생각할 수 없고 성인다운 대등한 관계를 맺을 수 없는 탄압받는 여성, 남편의 기분에 따라 희생자라는 이미지를 떠올렸던 것입니다. 하지만 남편들을 향한 상응하는 명령을 볼 때 그것은 결코 사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바울의 동역자들 중에는 여성들과 부부들도 있었고, 그 여성들은 남편들에게 가려진 그림자 같은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또한 바울은 본문에서 결혼 관계를 존경과 사랑의 관계에서 서로의 역할은 동일한 것이 아니라 상호보완적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즉 남편들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내는 연약한 그릇과 부드럽고 민감한 꽃(벧전 3:7)과 같으므로 괴롭히거나 거칠게 대해서는 안 되며 언제나 주님께서 자기 백성을 값없이 사랑하신 것처럼 사랑하고 또 존경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살전 4:3-5). 여기의 사랑은 친근한 애정이나 성적인 애욕이 아니라 아내를 하나님의 형상대로 치음 받은 인격으로서 대우하라는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아내를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것보다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라는 말이 더 크고 힘든 의미와 책임을 맡기는 것일 수 있을 것입니다.

 3:20-21,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바울은 자녀들에게는 순종하라”고 권면합니다. 이 단어는 앞 절에서 아내들에게 복종하라는 것보다는 더 강제적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아래에서 경청하다. 귀담아 듣다, 복종하다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제도(2)로서 십계명에서는 부모에게 손종 하도록 가르쳤고(20:12), 예수님께서도 강력히 명령하셨습니다(15:4-6). 구약성경에서는 부모에게 불순종하고 거역하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반역으로 무서운 형벌을 받도록 규정하고 있고(21:17, 20:9) 또한 이방인들이 짓는 죄악으로도 언급되고 있습니다(1:30). 그러므로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은 정당하고 옳은 일(6:1)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일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또한 아버지는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말라”라고” 권면합니다. 이 단어는 현재형으로 계속 습관적으로 성나게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사랑 없는 꾸지람, 도에 지나친 부당한 요구, 감정적인 체벌 등은 자녀들의 감정을 자극하여 자녀에게 상처를 주고 낙심케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는 일방적인 권위가 아닌 주님의 교양과 훈계로 자녀들을 올바르게 키워야 할 책임을 하나님께서 위임받은 보모에 지나지 않는다고 바울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6:1-4).

 3:22-23,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바울 당시에는 사회 신분 제도가 엄격히 존재하고 있었으며 종은 주인의 소유물로 간주되어 매매가 가능했고 심지어 죽일 수도 있었다고 합니다. 본문에서 바울은 주인과 종이 취해야 할 태도에 대해 권면하고 있는데, 이것은 종의 제도를 인정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의 관심은 사회 제도를 개혁해서 종을 해방시키자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고전 7:17-24) 복음을 통해 사람들을 새롭게 거듭나게 하는데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종들에게 자유를 꿈꾸는 것이 아니라 실제 지침을 주고자 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종들이 육신의 주인을 섬기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종은 주인을 주 예수 그리스도로 생각하고 무슨 일을 하든지 주님을 위해 하듯이 하라고 하고 있습니다.

 3:25-4:1, “불의를 행하는 자는 불의의 보응을 받으리니 주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심이 없느니라 상전들아 의와 공평을 종들에게 베풀지니 너희에게도 하늘에 상전이 계심을 알지어다앞 본문의 내용과는 대조적으로 잘못을 저지르는 자에 대한 경고가 나오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은 원래 종일 수 있으나 주인에게도 확대 적용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주인들은 자신들을 공의와 공평으로 대우하시는 하늘의 주인이신 주님처럼 종들에게도 공의와 공평으로 대우하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현대 우리에게 적용될 수도 있고 아니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은 그 당시 초기 기독교 성도들에게는 교통법규와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덕분에 기독교인의 거룩한 삶 때문에 313년 밀라노칙녕에 의해 기독교가 공인받을 때 로마인구의 10%가 기독교인이었다고 합니다. 오늘날에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바울의 권면을 받아들이고 생활의 지침서로 활용한다면 세상은 또다시 그리스도인의 거룩한 삶을 동경하게 될 것입니다. 이 시간 나는 과연 그리스도인다운 거룩한 삶을 살고 있는지 한 번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