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쉬운 에베소서강해]#2. 1:4-10. "구원의 목적"

2024. 2. 1. 11:17에베소서강해

 

이 서신 서두에 나오는 바울의 위대한 기도는 그리스도인 각자의 이야기, 곧 개인의 회심, 믿음, 영적 생활, 순종, 소망에 관한 모든 이야기를 담고 있는 더 큰 이야기에 대한 찬양입니다. 그 더 큰 이야기를 이해하고 찬양해야만, 우리 자신의 작은 이야기들 안에서 진행되는 모든 일을 이해할 수 있고, 하나님이 우리 삶 가운데서 그리고 우리 삶을 통해 하시는 일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기도는 세 부분으로 나뉘지만 각 부분은 다른 부분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고, 경배와 찬양으로 가득합니다. 4~6절은 첫 단락으로, 서론 격인 3절의 찬양과 이어 집니다. 7~10절은 둘째 단락이고, 11~14절에서 기도는 마무리됩니다.

 1:4-6,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다”본문은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이 있는 중요한 말씀입니다. 즉 예정 교리가 언급되고 있는 내용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한 시기는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에” 하셨다고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문자적으로는 “세상의 기초를 놓기 전에”라는 의미입니다. 이때는 모든 우주의 역사 이전으로 인간의 제한적 시간이 아닌 하나님의 영원한 때입니다. 이때는 성 삼위 하나님께서 영화롭게 교제하시면서(요 17:5) 영광중에 성도를 선택하시고 구속 계획도 세우셨던 때였습니다(벧전 1:20). 그러므로 예정은 모든 믿는 자들의 영적 은혜의 근원인 삼위일체의 사역인 것입니다.

 그 선택의 방법은 “그리스도 안에서”라고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예정은 그리스도의 구속을 전제로 하는데, 그의 성육신과 죽음, 부활 안에서 죄인들은 하나님의 예정 가운데서 택하심을 받아 구원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선택의 결과는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입니다. 이 두 단어는 구약의 희생 제물과 관계되어 있으며(출 29:36), 이러한 윤리적 순결성은 구속 사역을 통해 보여주신 사랑 안에서 나타나는 것이라고 바울은 논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예정의 주체는 “그 기쁘신 뜻대로” 예정하셨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자기의 아들들로 삼으셨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아들들”은 법적인 용어로써 양자로 입양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제도는 유대의 법에는 없고 로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관습이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창세전에 선택하여 거룩하고 흠 없는 자로 삼아 주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를 예정하여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한 가족이 되어(롬 8:17)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롬 8:29).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과 양자의 관계를 맺게 된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이라고 바울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이 본문을 충격적이며 믿기 어려운 일이라 생각한다고 합니다. 어떻게 하나님이 누구는 택하시고 누구는 택하지 않으실 수 있는가? 어떻게 우리의 결정이나 자유는 무시하고 하나님의 사전 결정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게 하실 수 있는가? 이에 대해서는 다양한 대답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 단락 전체에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소유한 것은 모두 하나님 은혜의 선물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을 위해 아무 노력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구원은 하나님이 주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얻는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더 큰 목적에 이르는 필수 단계, 아니 유일한 단계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메시아 안에서 우리를 택하시고 부르시고 빚으시고 인도하시는 것은 어떻게든 이 더 큰 계획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요점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위해 택함 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이루고자 하시는 일을 위해 택함 받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택하셔서 세상을 구원하시겠다는 그분의 약속을 전달하게 하셨습니다. 그 약속은 온 우주를, 특히 인간의 반역으로 말미암은 죄와 죽음에서 인류를 구원하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셨다는 바울의 말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그 오래된 뜻이 실현된 것의 일부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1:7-10,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을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신 것이요 그의 기뻐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속량은 원래 전쟁 포로나 노예의 몸값을 치르고 그들을 놓아준다는 의미의 속전(마 20:28)에서 비롯되었으며, 구속 또는 속상으로도 번역된다고 합니다. 우리는 죄의 노예가 되어 우리 자신을 자유롭게 할 수 없었으며 하나님께 사형 선고를 받았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자 그리스도를 내어주셔서 십자가에 피를 흘려 죄의 대가를 지불케 하심으로써 아무런 소망도 없는 노예 상태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셨으며 영원한 죽음의 임박한 형벌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하셨다는 것입니다(롬 3:24, 고전 1:30). 본문에서 바울은 예수님의 십자가 이야기를 하지만 유대의 오래된 유월절 이야기를 떠올리도록 하고 있는 것입니다. 유월절은 죽음의 사자가 이집트 땅에 들어왔고 그 밤에 문설주에 양의 피를 뿌린 이스라엘 백성은 죽음의 심판에서 구원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 순간에 주로 사용되는 단어는 ‘구속’ 혹은 ‘구원’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때 애굽에 들어가셔서, 종살이하던 백성을 직접 ‘사셨다’는 것입니다. 이제 그 옛이야기가 다시 실현되며 진정한 ‘구속’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죄 사함은 종의 진짜 주인이 베푸신 진짜 ‘구원’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희생의 피로 성취되었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하는 것, 곧 메시아 예수의 이야기와 그분의 죽음에 담긴 의미를 출애굽 이야기의 완성으로 설명하는 방식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찬양하는 유대의 고전적 방식이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예배를 드릴 때마다, 하나님이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을 통해 하신 일을 이야기하게 될 것입니다. 초기부터 그들은 하나님이 이전에 이스라엘을 위해 하신 일들을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이제 바울의 기도는 출애굽이 그리스도인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드러내는 데서, 약속의 땅이 그리스도인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보여 주는 지를 가리키며 마무리될 것입니다. 바울의 기도를 생각하며, 감옥에 있는 그가 우리를 해방시켜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쓸 때 어떤 마음이었을지 묵상해 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 다음,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신 일이 오늘도 일상에서 실현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들을 위해 마음을 열고 기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시간 나는 어떤 마음을 가지고 기도를 하고 있는지 한 번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