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2. 13. 16:24ㆍ고린도전서강해
본
오늘 본문 말씀의 핵심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함께 모여 빵을 먹고 잔을 마실 때 전달되는 상징적 메시지에 대한 바울의 설명입니다.
11:23,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본절은 예수님이 죽음에 넘겨지던 그 밤에 일어난 일에 대한 최초의 문서기록입니다. 복음서는 바울서신보다 뒤에 쓰였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럼 바울은 이것을 어디에서 들었을까? 그 당시 구전으로 내려오던 Q문서가 있었습니다. 그럼 바울은 그 문서를 보고 알았을까? 아니면 주님에게 직접 가르치심을 받았을까?
11:24-26, "축사하시고 떼어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성찬은 단지 기독교적 경건과 교제의 기회만이 아닙니다. 그것은 세상 전체를 향해, 특히 예수님을 십자가에 메달면서 그 일이 자신들을 몰락시킨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통치자들과 권세자들'을 향해 강력하게 선언하신 기회이기도 합니다(2:7-8). 성찬은 예수님의 죽음의 선언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으로 권력은 무너졌고, 그들에게 종속되었던 사람들은 해방됩니다. 하지만 바울이 본문에서 하고 싶은 말은 성찬의 의미를 똑바로 알려서 사회의 부자와 가난한 자 구별이 교회에까지 흘러 들어오게 놔두는 고린도인들의 부끄러운 형태를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전통적인 마지막 만찬 이야기를 상기시키면서, 식사 자리에 주님이 친히 계신다고 설명합니다. 성찬은 먼 과거에 떨어져 계시는 주님을 기리거나. 장차 오실 그분을 고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기념'을 통해 그분이 임재하신다는 것입니다.
11:27-28,"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에 대하여 죄를 짓는 것이니라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 지니" 성찬은 과거의 사건이 현재에 와서 되살아나는 순간이고, 미래에 있을 주님 재림의 순간이 이 시간으로 거슬러 와서 현재에 있는 우리에게 임하는 순간입니다. 그러므로 이 식사에 대해 무례를 범하는 것은 주님에게 직접 무레를 범하는 것이라고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11:29-30, "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니" 바울은 고리도교회에서 일어난 몇몇 교인들이 병들고 죽는 등 이상한 사건들의 의미를 해석해줍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이상하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바울은 모든 삶이 서로 연결되어 있고, 개인과 공동체의 행동과 신념과 관행이 건강을 비롯하여 인간이 겪는 여러 영역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실제로 그랬다고 철저히 믿었습니다.
11:31-32, "우리가 우리를 살폈으면 판단을 받지 아니하려니와 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정죄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 백성의 일원이 되는 신비한 특권 중 하나는, 말 그대로 미리 심판을 받아 마지막 날에 심판을 받지 않는 것입니다. 따라서 주님이 현재 우리를 심판하실 때, 그 결과는 징계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들은 심판과 경고 둘 다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성찬은 미래가 현재로 와서 우리와 만나는 순간이기 때문에, 이 심판과 징계가 거기에 초점을 맞추어 우리 앞에 선택 안을 제시한다는 것입니다. 당신의 행동이 이 식사에 걸맞은지 확인하면서 자신을 점검하고 '심판'하든지, 아니면 주님의 심사와 심판에 직면하든지 둘 중 하나라고 바울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11:33-34, '그런즉 내 형제들아 먹으러 모일 때에 서로 기다리라 만일 누구든지 시장하거든 집에서 먹을지니 이는 너희의 모임이 판단 받는 모임이 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그 밖의 일들은 내가 언제든지 갈 때에 바로 잡으리라" 바울은 한자리에 모일 때, 모두들 동등한 손님으로 똑같이 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함께 참여하는 식사보다 더 풍성한 식사를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은 그럴 형편이 못 되는 다른 그리스도인들 앞에서가 아니라 집에서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과거와 미래가 현재로 함께 합해지는 장엄한 순간이 축복이 아닌 심판을 가져올 수도 있다고 바울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자기가 도착해서 다른 일들도 바로잡겠다는 말로 마무리를 합니다.
바울은 다른 도시에서보다 고린도에서 성령의 역사함을 많이 일어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 기록도 없고, 즉 병고침, 축귀 사역. 감옥에서 지진이 일어나서 족쇄가 풀린 사건 등. 만일 바울이 빌립보나 루스드라나 에베소에서 보여준 기적들이 고린도에서 일어났다면 고린도 교인들은 바울의 말을 잘 들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고린도에서는 바울이 오직 복음만을 전했다는 것이 됩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은 바울에게 고린도에서 기적을 행하는 사건을 일어나지 않게 했을까? 이것이 오늘날 우리 교회에 주는 메시지가 무엇일까?
우리들은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었다고 해서 성인군자가 되는 것도 아니고 뭔가 특별한 능력을 가지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을 알고 믿기 시작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을 장성한 분량까지 데리고 가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만약에 하나님이 기적과 이적으로만 하나님을 믿게 하신다면 성경은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쭉정이와 알곡을 성경 말씀으로 가려낸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2,000년 전에 쓰여진 고린도전서를 보면서 지금의 교회와 너무나 같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알곡과 쭉정이를 가르는 작업은 오늘날도 계속 진행이 되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 시간에 묵상해봅시다. 나는 알곡인가? 아니면 쭉정인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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