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5. 23. 20:05ㆍ마태복음강해
많은 사람들이 ‘신약성경을 한번 읽어 봐야지’하고 성경을 펼치면 첫 페이지부터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한 이름들이 길게 나열된 것을 보고 당황할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 저자가 왜 책이 시작되는 부분에 족보들을 나열해 놓았을까를 알아야지 마태가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태가 살았던 그 당시 유대교 사회에서 이러한 족보는 1세기 유대인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독자들로 하여금 이 책의 궁금증과 흥미를 유발할 수 있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마태복음은 우리들을 위하여 지어진 책이 아니고 2,000년 전에 유대인들을 위하여 지어진 책이란 것입니다. 그 당시 유대인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두 가지 있었습니다. 하나는 이방인도 구원의 대상이란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예수님이 하나님이란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이 쓰였고 요한복음이 쓰인 것입니다. 즉 마태복음은 이방인도 구원의 대상이라는 것을 말하기 위해 쓰인 책이고 요한복음은 예수님이 하나님이란 것을 이야기하기 위해 쓰인 책이라고 이해하면 복음서을 해석하기가 좋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태복음을 읽을 때 현재 우리들의 시각으로 읽는 것이 아니라 1세기 유대인의 시각으로 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선조 이야기를 들려주는 유대인들은 대부분 아브라함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할 것입니다. 그러나 주후 1세기 무렵에는 다윗왕의 계보를 통해 자신의 족보를 추적할 수 있는 사람은 더물었습니다. 더군더나 솔로몬과 다른 유다 왕들을 거쳐 유배 시대에까지 이어지는 왕가의 족보를 통해 자신의 족보를 추적할 수 있는 사람은 더욱더 적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바벨론 유배 이후로는 이스라엘의 군주제가 대체로 제 구실을 못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예수님 탄생 전 200년 동안 유대인을 다스린 왕들은 다윗 혈통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당시 통치하고 있던 헤롯 왕가는 온전한 유대인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단순히 로마가 중동 지역에서 정책상 왕으로 세운 군대 사령관에 불과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자신이 고대의 참된 왕들의 족보를 계승한 후손이라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은 사실 정치적 선언을 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태는 지금 그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참된 왕이 될 사람의 족보는 이러하다고 유대인들에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그 당시 유대인들은 참된 왕을 기다리고 있었는가에 대해서 우리는 먼저 이해를 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위대한 약속을 주신 시조입니다.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을 받을 것이고, 모든 민족이 그의 가족을 통해 복을 받을 것이라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다윗은 위대한 왕으로 아브라함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으로부터 훗날 온 세상을 다스릴 것에 대한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바벨론 유배는 이 모든 약속이 이스라엘의 죄와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하여 영원히 상실된 것처럼 보였던 시기였습니다. 그러나 유배 시기의 예언자들은 하나님이 아브라함 백성과 다윗 왕가를 회복하실 것이라고 약속했습니다. 그 뒤로 이어진 오랜 세월 동안 즉, 일부 유대인들이 바벨론에서 돌아오기는 했지만 여전히 이방민족의 압제에 시달리며 살았던 그 세월은, 유대인들이 보기에 ‘유배’가 계속되는 것이나 다를 바 없었습니다. 그것은 여전히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죄와 그 죄로 인한 심판으로부터 구원해 주시기를 기다리는 시기였던 것입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마태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모든 일이 일어날 때가 왔다고, 지금이 바로 그때라고, 이 족보 마지막에 나오는 아이가 바로 그 옛날의 모든 예언을 속속들이 성취하러 온 그분, 사람들이 오랫동안 기다려 온 하나님이 기름 부으신 메시아는 것입니다.
또한 마태는 족보에 나오는 이름의 목록을 열네 개씩 세 그룹으로 묶어서 족보에 배치하였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계속해서 이어지는 어떤 가문의 일원일 뿐만 아니라 사실은 그 전체 족보의 목표임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도리어 열넷으로 나누는 것보다는 일곱 개씩 여섯 그룹으로 묶었다고 보는 편이 나을 것입니다. 일곱이라는 숫자는 가장 강력한 상징성을 지닌 숫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일곱 개씩 묶인 일곱 번째 그룹을 시작하는 자로 태어나는 사람이 그 전체 목록의 절정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즉, 예수님의 탄생은 이스라엘이 2천 년 동안 기다려 온 바로 그 탄생이라고 마태는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운 이름들이 나옵니다. 이방 여인의 이름인 것입니다. 왜 마태는 이방 여인들을 예수님의 족보에 등장시켰을까? 먼저 우리는 마태복음이 유대인들에게 이방인도 구원의 대상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하여 쓰여진 책이란 것을 염두에 두면 이해가 될 것입니다. 마태는 유다가 다말을 창녀로 취급한 사건, 보아스가 여리고성의 기생이었던 라합의 아들이라는 사실, 그리고 다윗이 헷 사람의 아내와 간음한 사실을 언급합니다. 마태는 마치 하나님이 이렇게 이상한 방식을 통해서도 일하실 수 있다면 이제는 또 어떻게 하시는지 한 번 주목해 보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들은 마태복음의 족보를 보면서 의문을 품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누가복음과 역대기와도 족보가 틀리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성경책을 역사책으로 읽으면 곤란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신앙을 위한 책이란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읽는 첫 독자가 누군인가를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그 뜻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역대기는 포로기 이후에 쓰여졌습니다. 그러면 첫 독자는 포로기 이후의 이스라엘 백성인 것입니다 역대기는 1장에서 9장까지 족보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역대기는 왜 이렇게 족보를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을 알려면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가를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이들은 하나님께 잘못하여 이스라엘이 멸망했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아직도 우리들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일까? 하는 정체성이 혼란한 시대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역대기에서는 이스라엘의 각 지파의 족보까지 세밀하게 기록함으로써 우리는 하나님께 선택받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이라는 정체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복음의 족보는 무엇을 강조하기 위함인가? 누가는 예수를 믿는 헬라인들에게 로마 황제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고 예수님이 진정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 당시 로마 황제는 ‘신의 아들’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이것이 로마제국의 신학이었습니다. 만약에 이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반역인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가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족보를 통하여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만 순서상은 유대인은 위로부터 아래로 헬라인은 아래로부터 위로 올라간다고 생각하면 무난할 것입니다.
마태복음은 신약성경의 맨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이 누구셨고 누구신지를 직접 탐구해 보려고 먼저 이 족보를 읽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일단 이 족보가 의미하는 바를 이해해야지 나머지 이야기를 읽어 나갈 준비가 된 것입니다. 마태는 이 이야기가, 하나님이 오랫동안 약속하신 것과 목적하신 것의 성취인 동시에 매우 새롭고 다른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날도 여전히 그런 식으로 일하십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들의 편견을 깨고 우리들이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일하시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서 우리들의 삶에서 간섭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느끼고 느끼지 못하는 것은 순전히 우리들의 믿음에서 결정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살아서 우리들의 삶을 간섭한다는 것을 믿는 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이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시간 나는 하나님이 나의 삶에서 간섭하고 계시는 가를 느끼고 있는지 한 번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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